호텔 11층 창밖, 거리.

호텔 11층의 창은 끝까지 열리지 않는다. 도시 아래 거리는 끝없이 어른거리는데, 안에서는 그 불빛이 두 겹의 유리 너머로만 닿는다.
늦은 비가 내리던 어느 밤, 그 거리에서 누군가가 우산 없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.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인지, 어디로 돌아가는 길인지 알 수 없었다. 다만, 그 사람이 입고 있던 검은 셔츠가 비에 젖어가는 모양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.
인연이라는 단어를 호텔 방에서 자주 생각한다.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거쳐 가는 공간. 누군가는 지난 밤 같은 침대에서 잤고, 또 다른 누군가는 같은 의자에 앉아 같은 거리를 바라보았을 것이다.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,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. 그래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거리의 비를 본 적이 있다.
그 셔츠는 결국 그 밤의 비를 기억할 것이다. 다음 도시로 가져갈 것이고,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옷을 보게 될 것이다. 인연은 어쩌면 그렇게 옷에 남는다.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니라, 사람과 옷, 옷과 옷 사이에.
— 어느 호텔 방, 11층.
